2009년 09월 04일
아크로바틱 블루스 - 3화
뒤죽박죽 음성 내용을추론 해 보자면 이런 것이었다. 재용이라는 녀석이 여느 때와 같이 버스를 탔는데 내가 졸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 녀석은 이 시간에버스에 있는 나를 보고는 잠시 의아하게 생각하고는 늘 그래왔듯 버스에서 영어단어 암기노트를 펼쳐 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암기에 너무 빠진나머지 버스 정류장을 지나칠 뻔 하다가 겨우 내렸는데 내리고 보니 내가 없더라는 이야기다. 역시 공부만 하는 녀석들은 주위를 돌볼 줄 모른다.아니 그 시간에 도착했으면 나에게 삐삐라도 한 통 칠 수 있는 거 아니냔 말이다. 물론 삐삐 진동에 내가 잠에서 깻을리가 만무하다.하지만 사람이 성의라는 게 있는데 그 녀석은 학교에서 무슨 낯짝으로 나를 대할 셈 이였냐는 말이다.
뒤늦게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원주가 내가걱정되어 음성을 남긴 것 이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침 보충이 끝나고 임시담임의 조회가 끝났음에도 담임은 내가 등교 하지 않은 걸 모르는눈치니, 어서 들어오라는 그런 내용이었다. D여고 선생이 으름장만 놓고 전화를 하지 않을 모양이거나, 혹은 깜빡 했거나, 나중에 전화 할요량인 듯 했다. 나는 문득 슬리버를 떠 올렸다. 슬리퍼(Sleeper) 즉 자는 사람이다. 슬리퍼 얘기가 나온 김에 우리학교 3대 잠신에대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슬리퍼는 등교와 동시에 잠을 자서 점심시간에 기상하여 밥 먹고 움직이는 녀석이다. 탄력을 받는 날엔 쉬는 시간에스트래칭을 해 가며 하루 종일 자는 경우도 잦았다. 그리고 드리머라는 녀석이 있다. 아침 1, 2교시엔 팔팔 하다가 2교시 직후 도시락을 먹고잠들기 시작해 점심시간을 지나 7,8교시에나 깨는 녀석인데 앞선 슬리버는 일찌감치 공부에 뜻을 접고 예체능을 준비하는 녀석에다 잠이 들지않으면 수업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했다. 그래서 슬리버는 선생님들이 깨우지 않았다. 하지만 이 드리머라는 녀석은 비록 공부는 못하지만깨워 놓으면 수업에 방해는 안 되므로 이따금씩 선생님들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떠들어 대는 놈은 맘 편하게 자고 조용한 놈은 맞아가면서 자고선생님들 생각은 아마 이럴 것이다. 드리머는 그래도 깨워서 수업을 듣게 해야지. 참으로 인도적이고 교육자 적인 태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녀석은 깨어있어도 안 듣는다. 다른걸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깨우면 그냥 깨어만 있을 뿐이다. 지나가는 길에 뭐하나 듣겠지? 단연컨데 오해다. 그리고 마지막 잠신 졸리버가 있는데 이 녀석이 아주 교활한 게 사람을 봐 가면서 잔다는 것이다. 만만한 문학, 생물, 영어1, 불어시간은숙면을 취하고, 국어, 영어2, 국사시간은 선생님들 컨디션을 보아가며 숙면 또는 노루잠을 취하는 녀석이었다. 갑자기 이야기가 다른곳으로 샜는데 여튼 이 슬리퍼라는 녀석은 종종 학교에서 자다가 깨면 그냥 집에 가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내가 오늘 학교를 빠진다고 해도,수업시간에만 안 걸리면 등교 후 야자만 도망 간 것으로 간주 될 여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원주에게 일단 내 책상을 빼 놓으라는 음성을남겼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 고민을 하면서 이런저런 가능성을 타진 해 봤다. 뭐 무단결석이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내게는 큰 일탈이었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일 한번 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버스타고 왔던 길 돌아 학교에 담 넘어 들어가서가방을 숨기며 교무실을 지나 교실로 간다는 건 생각만해도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내일 사실대로 진술하고 깔끔하게 하루 당하는 게여러모로 편했다. 운만 좋으면 안 걸릴 수도 있는 것이고. 사실 나야 뭐 교실에 있으나 없으나 요양중인 담임만 아니면 크게 나에게 신경 쓰는선생도 없었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동시에 할 일이 없었다. 나는 일단 집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걷다보면 할 일이생각나겠지 했는데 30분째 걷기만 했더니 다리가 아팠다. 혹시 내가 장기간에 걸친 오리걸음으로 단련이 됐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아침 오리걸음 그것도 공복에. 이것은 체벌이 아닌 아동학대 딱 그 수준이었다. 아니 어떻게 선생님이 선도 차원에서 체벌하는 걸 아동학대라고까지표현 할 수가 있나. 아동학대가 얼마나 무서운 범죄이며, 아이들에게 얼마만큼의 상처를 안겨주는지 생각 해 본적도 없는 고삐리가 투정을 부린다고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렇다. 바로 이 변형 오리걸음이 내게는 범죄이며 상처였다.
이 말을 학급회의 시간에 꺼낸 적이 있다.내 의견 즉 ‘지각생들 오리걸음은 학대다. 깔끔하게 엉덩이를 때려 달라’ 뒤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지금은 용양중인 나의 담임은 나를 교실뒤로 불러내더니 당구큐대를 잘라 만든 지시봉으로 내 엉덩이를 때렸다. 보통날 같았으면 익숙한 일이라 엉덩이를 비벼대며 아픈 표정으로일어났겠지만, 그날은 마치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없는 일인 인권선진국에서 유학 온 학생이 당한 거 마냥 기분이 나빴다. 그런 내 표정을 읽은담임은 암만 농담이라도 내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며 진지하게 화를 냈다. 그럼 앞으로 지각을 안 할 생각을 해야지 엉덩이를 때려달라는 게말이냐며 혀를 찼다. 그리고 앞선 그 논리 ‘선생이 선도 차원에서 체벌하는 걸 아동학대라고까지 표현 할 수가 있나.’를 내세우며 나를나무랐다. 나도 할 말이 있었지만 말대꾸 한다고 맞을까봐 말을 접고 말았다.
그때 내 생각은 이랬다. 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선생님들이선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왜 그 마음을 괴롭히거나 가혹하게 함으로써 표현을 하느냔 말이다. 가령 아프리카에는 어린시절할례를 당하는 소녀들이 있다. 할례라는게 국제단체에서는 이를 아동학대라 규정짓고 근절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자. 그할례시술을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그 소녀가 다 잘되라고 하는 거란 말이다. 문화마다 다르지만 숫처녀의 증표가 됐든 성년 또는 어떠한 직위를획득했다는 표시의 의미로 행해져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숫처녀의 증표를, 직위 획득의 표시를 왜 하필 참기 힘든 고통을 주는그 방법을 통해서 해야 하느냔 말이다. 그렇지 않나? 왜 하필 선도를 오리걸음으로 하느냔 말이다. 그렇지 않나?
물론 할례의식을 고통을주는 학대로 규정 할 것이 아니라 문화,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변종 오리걸음도 교풍, 역사적 맥락에서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나는 반대의 의견도 이해를 하는데 학교는 왜 내 의견을 이해를 못하느냐는 말이다. 뭐어른 되면 추억이 되고 이해하는 날이 올 거라고? 아니 내가 지금 어른이냐고?!!! 고삐리인 나도 어른인 담임 생각을 이해하는데 왜 어른이 내생각을 이해 못하냐고! 그런데 어른이 되면 이해한다니 나 참. 이게 도대체 무슨..... 도저히 열이 받아서 오리걸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미루어야겠다. 단 한 가지 그 변종 오리걸음은 무었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나는 주문대 앞에 서서메뉴판을 잠시 바라보았다. 화장을 엷게 한 왠지 생선을 닮은 듯한 누나가 상냥하게 말을 걸어왔다.
‘주문 도와드릴게요.고객님’
생선을 닮은 누나가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휘시버거 주세요.세트요.’
나는 속으로 웃음이터져 나오는 걸 참고 있었는데, 누나는 내게 더 할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500백원 더 추가하시면 콜라랑 후랜치프라이 라지로 드실 수 있습니다. 고객님?”
“아니요 괜찮 키킥”
결국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마도 그 누나를 물고기로 본 사람은 몇 없었나 보다. 그래서 내가 자기를 놀리는 줄도 모르고 상냥하게 라지셋트 설명을 하는 꼴이라니속으론 미안했지만 웃음이 나오는 걸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햄버거를 받아들고창가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침 당구비 싸기로 유명한 K대 교문이 정면에 보였다. 방학 중이라 그런지 아침이라 그런지 대학생들이 많이보이지 않았다. 목이 마른 나는 콜라를 한 모금마시고 햄버거를 한입 가득 물었다. 조금 짠 듯 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혼자 먹고있으려니 내 신세가 좀 처량하게 느껴졌다. 주로 창가자리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대학생인 듯 해 보였는데 쌍쌍이 앉아있거나 또는 서넛이앉아있었다. 공공장소에서 혼자 있는 사람이 으레 그러하듯 본이 아니게 주위 사람들 대화를 엿듣게 되고 말았다. 나를 기준으로 우측으로 3칸째에 앉아있는 커플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 by | 2009/09/04 09:35 | 트랙백 | 덧글(1)



